ep.08 나의 영원한,

김미리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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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 나의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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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 참 조용해요.”


홀로 애 둘을 데리고 월세방을 구하러 다니던 남례 씨의 단골멘트입니다. 눈치 없는 아이들은 그의 입이 다물어지기도 전에 치고받고 싸워, 집 구하는 품을 늘리곤 했습니다. 사실 집이 아니라 방을 구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요. 남매는 어찌어찌 구한 단칸방에서도 늘 말썽을 피워, 남례 씨는 늘 주인집 눈치를 봐야 했어요.


그가 인천의 공장 일하던 시절, 근로자를 위해 제공되던 작은 기숙사 방에 아이 둘을 몰래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에서 월급봉투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월급을 봉투에 담아 현금으로 주던 시절이었거든요. 있지 말아야할 장소에 있던 아이 둘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남례 씨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숙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 둘을 방에 놓고 문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뒤 출근해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신발 공장에서 본드로 바닥 창을 붙이는 일을 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도 금세 다시 일어나야 했어요. 비 오는 날 홀로 이사를 하며, 아이들을 비 맞추지 않으려 씌워둔 비닐을 쓰레기 더미로 착각하고 달려오는 쓰레기차에 혼비백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궂은 날들이 하루하루 흘러갔습니다. 그는 속절없이 늙었고,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는 장성하였습니다. 이 편지는 그중 여자아이가 부치는 편지입니다.


제가 아직 20대던 시절, 할머니가 늙은 줄은 알면서도 영원히 죽지는 않을 줄 알았습니다. 제 생이 아득하여 할머니의 나이듦을 조금도 생각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울로 상경한 저는, 지방에 있는 할머니 집엔 어쩌다 들렀습니다. 그마저도 제 집에 간다고 서둘러 나서기 일쑤였어요. 현관에 앉아 신발을 꿰고 있을 때면 할머니는 등 뒤에 오도카니 서서 ‘자고 가지…’하며 아쉬움을 비쳤어요. 하지만 저는 아랫목에 펼쳐둔 이불 두 채를 보고도 약속이 있다며 떨치며 나서 버렸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5층 베란다에 서서 훠이훠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골목 끝으로 제가 사라질 때까지요.


저는 독립 이래 내내 오피스텔이나 빌라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올봄에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최근엔 베란다에 서서 길가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배웅하는 이도, 기다리는 이도 없는데 마음이 쓸쓸해지곤 하더라고요. 이제 보니 베란다에 서서 손 흔들던 할머니가 생각나서인 것 같습니다.


나의 할머니 김남례 씨. 그의 분주하고, 벅차고, 억울했던 마음. 지치고, 서럽고, 아프던 심정. 그걸 제가 다 살아 늙는다고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할 때는 부디 다른 생이나 다른 세상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 생에선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삶이 너무나 가볍기를,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만 마음 쓰는 세계에 있기를- 하고 기도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오빠와 할머니를 모신 봉안당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여름 홑이불을 덮고 누우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집에서 몇 살까지 살게 될까.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지붕 아래 사람까지 집이라는 걸. 내 할머니 김남례 씨가 나의 영원한, 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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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그리고 오빠와,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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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7일,

타령꾼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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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집타령>

작사작곡편곡 ㅣ 김미리


집에 있는 시간과 집을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산다. 좋아하는 것은 집밥, 잠옷, 눕기. 그리고 반려묘 소망이.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노인처럼 사소한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무튼, 집』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를 썼다. 가구브랜드 인어피스에서 콘텐츠기획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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