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콩떡 키즈는 자라서

김미리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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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 콩떡 키즈는 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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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콩떡을 좋아하는 어린이였습니다. 떡볶이로 유명한 신당동에 살면서도 즉석떡볶이보다 콩떡을 더 좋아했어요. 반짝반짝 윤기 나는 하얀 부분은 쫠-깃하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까아만 콩은 꼬득-한 콩떡(정확히는 콩 송편)을 파는 곳, 그곳은 동네 목욕탕 앞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목욕탕에 가는 날은 외할머니에게 어깨를 꽉 붙들리고, 도망치다 붙들려와, 등짝 몇 대를 맞고, 결국 온몸이 벌게지도록 때를 밀렸죠. 게다가 '아이고, 사람덜. 여기 좀 보쇼. 이 시커먼 때칼국수 좀 보쇼~'하고 온 목욕탕이 울리게 외치는 소리까지 감당해야 했죠. 하지만 괜찮았어요. 잠깐의 고난과 역경만 이겨내면(?) 콩떡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개운하고 가뿐해진 몸으로 떡집 앞을 서성이던 그 기분, 잊지 모태…! 그때 떡집은 제게 환희의 공간이었습니다.


열아홉 살, 수험생의 합격기원떡을 포장하는 또 다른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서울에서 춘천으로 이사를 했고, 방앗간 겸 떡집을 하는 새아버지가 생겼거든요. 말썽꾸러기 이부동생도 하나 생겼습니다(이때까진 얘가 막둥이였는데, 제가 스물이 되던 해에 찐막둥이가 태어나 지금의 사남매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분주한 떡집 일을 돕기로 하고 보니 수험생들을 위한 합격기원떡 포장이더라고요. 찹쌀떡을 용기에 몇 개씩 넣고 랩을 두르고 스티커를 붙이며 생각했습니다.


'이거 포장하다 내 합격운 다 써 버리는 거 아냐?', '근데 이런 거 다 미신이지, 뭐. 이런 거 먹는다고 붙냐?' 그러면서도 내심 속상했어요. 수능준비 잘 돼 가냔 말도 없이 무심하게 다른 수험생 떡이나 포장시키는 부모님이 미웠어요. 그때 떡집은 머뭇거림과 서러움의 공간이었어요. 더이상 콩떡도 찹쌀떡도 좋아하지 않았고요.


스물아홉, 연휴를 싫어하는 직장인이었습니다. 동료들은 미혼인데 왜 연휴가 싫으냐며, 부디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부추겼어요. 자신은 시댁에 가야 한다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요. '시집살이는 잠은은 잘 수 있죠? 떡집살이는 잠을 못 자요….'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습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생각했어요.


아프다고 할까?

회사에 급한 일 생겼다고 할까?

해외로 토낄까?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행하기도 했어요. 그런데요, 연휴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게 더 지옥이었어요. 몇 번의 파업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무렵 떡집은 애증의 공간이었어요. 엄마가 살뜰히 챙겨 준 떡들은 서울집 냉장고에 차곡히 쌓였다가 결국 버려지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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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회사는 때려치울 수 있어도 떡집 딸은 제 맘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서야 마침내요. 부모님은 퇴직이라고는 모르는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니까요! 그런데 재작년, 떡집 대빵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슬픔을 묻어 두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땐, 앞으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엄마가 혼자 떡집을 운영할 수도 없고, 갑자기 사람을 고용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오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떡집 일을 돕기로 해서, 지금은 엄마와 오빠가 함께 떡집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떡집에서 불성실한 명절 뜨내기 알바를 맡고 있습니다. 일하다 너무 피곤하면 가게 딸린 작은 방으로, 엄마와 동생이 사는 집으로 슝 도망가 숨을 고르고 와요. 엉망진창이죠? 누가 알바를 이렇게 불성실하게 해요, 헤헤... 그런데 딱 이 정도가 제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정도더라고요.


그간 명절이 부담스럽고 힘들었던 건- '그냥 저' 때문이더라고요. 제가 너무... 애를 썼어요. 제 안에는 아직 가족들에 대한 크고 작은 서운함, 깊은 원망의 흔적, 채워지질 않을(것 같은) 공백감이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또 가족에게 잘 보이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런 인정욕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제 생업을 제쳐두고 가족 모르게 무리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명절 전후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고요. 그런데 그 희생과 애씀을 알아주지 않으면, 가벼이 생각한다고 느끼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그럴 때면 '윽, 대단한 상처다! 이런 상처 또 받고 싶지 않아!'하며 도망 갔고 그게 "명절 싫어 마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쓰고 보니 부끄럽네요. 그렇지만 사실이니까요. 이런 마음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뿅 사라지거나 금세 성숙해지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저는 스스로를 깎지 않고 가족 속에 그냥 저로 있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요즘 떡집은 배움의 공간입니다. 60대의 엄마, 40대의 오빠를, 20대의 동생들, 먼 곳으로 떠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공간이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떡은 따뜻한 곳에서 여덟 시간을 푹 재운 뒤 모락모락 김이 나게 쪄낸 증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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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증편 사진이 없어서 올해 먹은 오색가래떡국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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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소식

2026 서울리빙디자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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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획자이자 co-Founder로 일하는 인어피스가 2026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부스로 참여합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전일 상주 예정이니 오시는 분이 계시다면 편한 마음으로 들러 인사 나누어요!


🔖   2026 서울리빙디자인페어

🗓️   2026/02/25 (수) - 2026/03/01 (일)

📍   삼성역 코엑스 A홀 A-942 인어피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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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파느라 지난 <주간 집타령>을 발송하지 못했습니다. 이름은 김미리인데 '미리' 써 놓기는 안 되는 접니다. 그리하야! 이번 주는 오늘과 일요일, 2회 발행입니다.


써 놓고 보니 일요일이 이삿날이네요. 이번에는 토요일에 미리미리 써 둘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일요일에 집타령이 안 온다? 김미리 말고 김나중이라 불러주세요(단호)!



김나중 아니아니,

타령꾼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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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집타령>

작사작곡편곡 ㅣ 김미리


집에 있는 시간과 집을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산다. 좋아하는 것은 집밥, 잠옷, 눕기. 그리고 반려묘 소망이.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노인처럼 사소한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무튼, 집』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를 썼다. 가구브랜드 인어피스에서 콘텐츠기획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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