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5

2023년 5월 2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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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의 작약은 알사탕 같은 꽃망울을 순서대로 터트리고, 둥굴레의 소박한 연둣빛 꽃은 이제 지는 중입니다. 매년 5월이면 가지가 휘어지도록 탐스런 꽃을 피우던 불두화는, 올해는 조금 기운이 없습니다. 아마 지난 계절의 가지치기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장미꽃도 유난히 늦습니다. 장미꽃의 메인 시즌까지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아직 단 한 송이의 꽃도 피우지 않았거든요. 서운하고 아쉽긴 하지만... 뭐 그런 해도 있는 것이지요.


대신 이른 봄부터 분홍빛 꽃을 피웠던 금낭화가 여전하고, 이웃집 마당에서 입양해 온 보랏빛 매발톱의 꽃이 조롱조롱 맺혔습니다. 몇 포트 심었던 꽃잔디는, 화단의 빈 곳을 찾아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허브들도 마찬가지고요.


방금 전 엉덩이가 통실통실한 호박벌이 날아와 손톱만 한 꽃잔디의 꽃잎 위에 앉으니, 작은 꽃대가 폭 주저앉습니다. 유난히 통통한 호박벌이 무거운 모양이에요(호박벌의 엉덩이를 보면 소망이의 엉덩이가 떠오르는 집사입니다) 귀엽고 웃음이 나는 장면이죠? 주방에 앉아 5월의 화단을 내다보며 주간보고를 보냅니다. 작은 일에 서운하고 아쉽다가도, 또 이렇게 웃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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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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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의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을 꼭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일을 이야기하실 건가요? 저는 첫 책을 쓰고, 출간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책 출간은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쓰기는커녕 읽는 사람도 되지 못했던 제가, 읽고 쓰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은 '구태여 왜 사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고요. 책을 만들며 책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삶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 담고 있는 커머스 업계 외에 다른 직업인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갈 수 없는 곳을 제 책이 대신 가서, 곳곳에 독자들을 만나주었지요. 말로 다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의미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책을 쓰며 끝내는 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작도 잘 못하지만, 끝도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인데요. 둘 중 그나마 시작에 아주 쪼-오끔 더, 자신이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초반 스퍼트는 나쁘지 않거든요.


문제는 그러다가 금방 지쳐서 나가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시작 후 1 ~ 10% 지점까지는 순항해요. 그러다 이내 온 곳을 돌아보고 다시 되돌아가요. 뭔가 이상해서 다시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거든요. 그렇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초반 진도율 10% 이내의 구간만을 맴돌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게 제 패턴입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작한 문장은 꼭 끝을 맺어야 했습니다. 첫 단어를 쓰고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 말이죠. 마치지 않은 문장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니까요. 어렵게 쓴 몇 개의 문장이 모이자 문단이 되었습니다. 문단이 되자 또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앞서 말한 저의 고질병...)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되뇌었습니다. 이것은 초고일 뿐이라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닫고 나면 그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마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는 항상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마감을 딱 하루만 미루면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때마다 기다리는 편집자님과 협업자들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매주 그렇게 마감을 해가며 배운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문장은 지금 써 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이 마감을 해낸 내가 내일 다시 쓰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주 맺어낸 '끝'들이 모여 책이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은, 제게 끝내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마침내, 스스로 끝내는 힘이요.


요즘 혼자 하는 일이 많아지고, 홀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끝내는 힘의 중요성을 체감합니다. 아쉽게도 끝내는 힘은 근력과 같아서 계속 단련하지 않으면 손실되더라고요. 제가 매주 이렇게 퇴사원 주간보고를 부칠 수 있는 것은 끝내는 힘 덕분이고, 지속하는 이유도 끝내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매주 퇴사원 주간보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끝내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해, 퇴사원 주간보고의 분량을 조금 적게 조절할 예정입니다. 한 주에 여러 개의 마감이 있고, 한 주에 써야하는 글의 분량이 많아진 상황이거든요. 격주 발행을 할까도 고민했는데, 매주 구독자님을 만나고픈 제 욕심이 승리했습니다.


앞으로 퇴사원 주간보고는 '한 꼭지의 글' + '주간보고 요약' 정도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구독자님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새삼 느끼는 것은, 끝과 시작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끝내는 힘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으니까요. 구독자님께 끝내는 힘을 알려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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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고 요약

퇴사원이라 회장님도 못말리는, 진짜 tmi 파트


[지난주 한 일]


✔︎ 새 책 계약

출간 계약을 했다. 계약서에 초고 인도일자를 12월 31일로 쓰고 집에 와서 생각했다. '아, 좀 여유있게 한다고 할 걸 그랬나? 내가 또 너무 경솔했군...' 괜찮다, 미래의 김미리는 오늘보다는 유능할테니까.


✔︎ 인터뷰집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실물영접

인터뷰이로 참여한 인터뷰집이 나왔다. 어딘가에 OO한 나로 소개되는 일이 익숙하지 않지만(익숙해질 리도 없지만), 조금 먼저 지나간 사람의 선택과 경험이 궁금한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스포일러가 되었으면 좋겠다.


✔︎ 또 다른 책의 샘플원고 마감

써 보지 않은 종류의 글이라 쓰는 내내 힘들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잘 써서가 아니라 기특해서. 결국 해낸 내가 좋아서.


✔︎ 종합소득세 신고

작년에 세무사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감에 차있었는데, 올해 신고유형이 바뀌는 바람에 (아마도 책 인세가 비사업자 사업소득으로 분류되어서인 것 같다) 당황 및 좌절... 한참 헤매다 어찌저찌 마무리하고 저장 눌렀는데, 로그인이 만료되었다는 안내창이 반겨주었다. 다음 주에 재시도하는 것으로...

[이번주 계획]



☐  종합소득세 (다시) 신고

중간저장 필수.

☐  ⟪수풀집편지⟫ 책 작업 

수풀집편지의 독립출판을 작년 연말부터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기획서만 된 상태. 이번 주에는 필히 진행중인 상태가 되기.

☐  평일 아침 산책 2회

☐  6월 월간 계획 수립 + 마감 루틴 만들기

☐  수풀집 마당 잔디 깎기 + 가을 들꽃 파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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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낸 퇴사원 주간보고를, 보통 월요일 출근길에 읽으시더라고요. (메일을 보내는 스티비라는 시스템을 통해 구독자님의 오픈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알고 난 이후로는 월요일 아침에 보면 기운 날 사진이 어떤 것들일까, 생각하며 주간보고에 담을 사진을 고릅니다.


이번 주는 5월의 맑은 하늘과 꽃, 5월의 초록, 모닝커피 사진으로 정했습니다. 한 주를 여는 아침,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주간보고를 보낼게요. 평안한 한 주 보내세요.


2023년 5월

퇴사원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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