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김미리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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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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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집을 샀습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로만 만나던 작가예요. 이렇게 온전한 단행본으로는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요. <인연>이라는 작품이 워낙 유명하여 동명의 단행본을 많은 이들의 서가에서 만나며 자라왔습니다. 그런데도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이상하네요.


이번에 피천득 선생님의 책을 집어 든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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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라는 제목 덕분이에요.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많이 읽던 <인연>이라는 수필의 한 구절인데, 이렇게 책의 제목으로 꺼내 놓으니 뭔가 새로운 기분이더라고요. 두 번째는 표지에 분홍 배털을 가진 자그마한 새에게 반한 것 같아요. RKO 작가의 「새야 새야」 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찾아보니 호주 남동부의 토종 울새인 분홍 울새(Pink robin)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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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스펭귄  


울새의 배털 색상과 맞춘 표지와 책등의 포인트 컬러, 핑크도 아주 산뜻했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이었던 세 번째 이유는, <오월>이라는 수록작의 첫 구절에 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갑작스러운 편지는 이 수필의 일부를 들려드리기 위해 시작했어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중략)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구독자님, 호옥시 집타령이 매주 오지 않아 기다리셨나요? 송구한 마음이 먼저 들긴 하지만, 기다려주셨다면 그 또한 기쁠 것 같습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고 읽으면서 구독자님을 생각했어요. 구독자님들은 어떤 5월을 보내고 계실까, 혹시 이 수필의 한 구절이 다시 안 올 2026년 5월 속 작은 기쁨이 되지 않을까 하면서요.


요즘 일로 발행해야 하는 콘텐츠들에 파묻혀, 즐겁게 하던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을 마냥 미뤄두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뭔가 삶에 흥이 안나는(?) 거예요. 집타령을 신나게 못한 아쉬움과 구독자님에 대한 죄송스러움이 더해져서 그랬겠지요.


<'주간' 집타령>이라는 뉴스레터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이미 월간 집타령이 되어버린...) 편지 부칠게요. 그럼 며칠 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싱그러운 5월의 금요일 보내시길요.


2026년 5월 15일


오월 속에서 

타령꾼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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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집타령>

작사작곡편곡 ㅣ 김미리


집에 있는 시간과 집을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산다. 좋아하는 것은 집밥, 잠옷, 눕기. 그리고 반려묘 소망이.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노인처럼 사소한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무튼, 집』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를 썼다. 가구브랜드 인어피스에서 콘텐츠기획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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