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40)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풀집과 꼭대기집을 고치고 가꾸면서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 섣불리 시작할 수가 없었어요. 목공은 수강료도 비싼 편이고 개인 장비도 필요하잖아요. 게다가 기초과정이 대부분 6개월 단위더라고요. 무엇보다 강한 체력을 요하는 활동인데, 저는 체력이 무척이나 비루한 인간이거든요.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큰 맘을 먹고 목공아카데미에 등록했습니다. 몇 년 간 고민하던 일이니 ‘드디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것 같아요.
드디어,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
춘재와 추재, 그리고 나이테
목공수업에 등록하면서 상상한 제 모습이 있습니다. 멋진 목공기계들로 가득한 기계실에서 나무를 자르고 켜는 목수의 모습이요. 왜 목공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첫 수업날 가장 먼저 한 것은… 책상에 앉아 나무의 특성과 생애를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실망했냐구요? 솔직히 잠깐은 그랬는데요. 찰나의 서운한(?) 감정이 지나가자 너어-무 재밌는 시간이 찾아왔어요. 선생님이 나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거든요. 구독자님들께 잠시 들려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듯이 나무 또한 그렇습니다. 날씨가 온화하고 수분과 양분이 충분한 계절, 봄을 맞이하면 나무의 세포분열도 왕성해지죠. 나무의 조직들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자라나기 때문에 색이 연하고 강도도 무릅니다. 이때 형성된 나무의 조직을 ‘춘재’라고 합니다. 반면 늦여름부터 가을, 겨울처럼 생육환경이 나빠지는 시기를 통과할 땐 생장이 더딜 수밖에 없겠죠? 양분과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힘겹게 자라기 때문에, 이때 자란 부분은 색이 짙고 강도도 높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나무 조직을 ‘추재’라고 해요. 그러고 보면 힘겨운 시기를 보낼 때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은 나무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이렇게 각기 다른 계절을 보내며 만들어진 춘재와 추재가 합쳐져, 나무의 한 해를 나타내는 ‘나이테’가 됩니다. 보드라움과 맑음을 내어준 계절, 꿋꿋함과 또렷함을 만들어준 계절이 한데 모이는 거죠. 그 계절들이 쌓이고 쌓여 물결처럼 퍼져 나가면 나무의 고유한 무늬와 결이 됩니다. 쓰고 보니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같네요.

학용품
‘목공’이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으니 학용품을 마련해야겠지요? 초보 목공인에게 필요한 버니어 캘리퍼스, 대패, 연기자, 등대기톱, 공구함 등등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는 목공 동기님들과 공방 한쪽에서 각자의 장비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떤 이는 곧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고, 어떤 이는 자신의 것임을 나타내는 스티커나 예쁜 패턴의 마스킹테이프를 부착했습니다. 저는 ‘merrymiry’라는 제 닉네임을 삐뚤빼뚤 적어 넣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말이예요. 새 학기에 학용품 장만한 어린이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모두가 소리 내어 웃었어요. 무언갈 새로 배울 마음을 먹고 설레하는 스스로를 귀엽고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공방에 가득찼어요.
선생님
제 목공 선생님은 제가 프리워커가 된 후 첫 클라이언트가 되어주신 가구브랜드의 대표님이자 꼭대기집(서울집)의 하우스메이트입니다. 오랜 친구이자 인생 선배님이기도 하죠. 실은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수업등록이 꺼려졌어요. 제가 스승으로 모시며 진지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걱정됐고, (조심하겠지만) 무심결에라도 친분이 티 나면 다른 수강생분들이 불편하실 것도 같아서요. 그런데 막상 등록하고 배워 보니 불필요한 염려였더라고요. 저희는 깍듯하게 “선생님”, “미리님”이라고 부르며 서로의 본분인 '가르침'과 '배움'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집 안팎에서 마주칠 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성실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공을 할 때는 진중하고 멋졌습니다. 역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에게는 존경심이 생길 수밖에 없나 봅니다. (물론 수업이 끝나면 바로 호칭을 전환하지만요?)
*
지난 토요일이 네 번째 수업이었습니다. 몇 번의 수업을 통해 목공 이론을 배웠고 목공 기계와 수공구 사용법을 익혔어요. 저만의 원목도마를 완성했고, 지난 수업 때부턴 소망이에게 선물할 고양이스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반려묘가 사용할 가구를 제 손으로 만든다는 게 엄청 신나는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조심스럽기도 해요. (6.7kg의 물범핏을 자랑하는) 통통한 소망이가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안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아직 목공수업 4회 차, 미천한 실력이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차근히 배워나가려 합니다.

사실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가 한참은 남아 있는데요(다 못한 나이테 이야기, 나무의 수명과 순환림 이야기, 옹이/심재와 변재 이야기, 귀여운 장비 자랑 등등...) 이런 식이면 주간보고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마무리해봅니다. 목공 수업은 내년 1월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할 이야기들도 자연히 많아지겠지요? 가끔 목공 이야기를 담아 보내겠습니다
2024년 8월
퇴사원이자 초보 목공인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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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주차 주간보고 드립니다 (vol. 40)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풀집과 꼭대기집을 고치고 가꾸면서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 섣불리 시작할 수가 없었어요. 목공은 수강료도 비싼 편이고 개인 장비도 필요하잖아요. 게다가 기초과정이 대부분 6개월 단위더라고요. 무엇보다 강한 체력을 요하는 활동인데, 저는 체력이 무척이나 비루한 인간이거든요.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큰 맘을 먹고 목공아카데미에 등록했습니다. 몇 년 간 고민하던 일이니 ‘드디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것 같아요.
드디어,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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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재와 추재, 그리고 나이테
목공수업에 등록하면서 상상한 제 모습이 있습니다. 멋진 목공기계들로 가득한 기계실에서 나무를 자르고 켜는 목수의 모습이요. 왜 목공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첫 수업날 가장 먼저 한 것은… 책상에 앉아 나무의 특성과 생애를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실망했냐구요? 솔직히 잠깐은 그랬는데요. 찰나의 서운한(?) 감정이 지나가자 너어-무 재밌는 시간이 찾아왔어요. 선생님이 나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거든요. 구독자님들께 잠시 들려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듯이 나무 또한 그렇습니다. 날씨가 온화하고 수분과 양분이 충분한 계절, 봄을 맞이하면 나무의 세포분열도 왕성해지죠. 나무의 조직들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자라나기 때문에 색이 연하고 강도도 무릅니다. 이때 형성된 나무의 조직을 ‘춘재’라고 합니다. 반면 늦여름부터 가을, 겨울처럼 생육환경이 나빠지는 시기를 통과할 땐 생장이 더딜 수밖에 없겠죠? 양분과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힘겹게 자라기 때문에, 이때 자란 부분은 색이 짙고 강도도 높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나무 조직을 ‘추재’라고 해요. 그러고 보면 힘겨운 시기를 보낼 때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은 나무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이렇게 각기 다른 계절을 보내며 만들어진 춘재와 추재가 합쳐져, 나무의 한 해를 나타내는 ‘나이테’가 됩니다. 보드라움과 맑음을 내어준 계절, 꿋꿋함과 또렷함을 만들어준 계절이 한데 모이는 거죠. 그 계절들이 쌓이고 쌓여 물결처럼 퍼져 나가면 나무의 고유한 무늬와 결이 됩니다. 쓰고 보니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같네요.
학용품
‘목공’이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으니 학용품을 마련해야겠지요? 초보 목공인에게 필요한 버니어 캘리퍼스, 대패, 연기자, 등대기톱, 공구함 등등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는 목공 동기님들과 공방 한쪽에서 각자의 장비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떤 이는 곧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고, 어떤 이는 자신의 것임을 나타내는 스티커나 예쁜 패턴의 마스킹테이프를 부착했습니다. 저는 ‘merrymiry’라는 제 닉네임을 삐뚤빼뚤 적어 넣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말이예요. 새 학기에 학용품 장만한 어린이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모두가 소리 내어 웃었어요. 무언갈 새로 배울 마음을 먹고 설레하는 스스로를 귀엽고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공방에 가득찼어요.
선생님
제 목공 선생님은 제가 프리워커가 된 후 첫 클라이언트가 되어주신 가구브랜드의 대표님이자 꼭대기집(서울집)의 하우스메이트입니다. 오랜 친구이자 인생 선배님이기도 하죠. 실은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수업등록이 꺼려졌어요. 제가 스승으로 모시며 진지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걱정됐고, (조심하겠지만) 무심결에라도 친분이 티 나면 다른 수강생분들이 불편하실 것도 같아서요. 그런데 막상 등록하고 배워 보니 불필요한 염려였더라고요. 저희는 깍듯하게 “선생님”, “미리님”이라고 부르며 서로의 본분인 '가르침'과 '배움'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집 안팎에서 마주칠 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성실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공을 할 때는 진중하고 멋졌습니다. 역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에게는 존경심이 생길 수밖에 없나 봅니다. (물론 수업이 끝나면 바로 호칭을 전환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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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 네 번째 수업이었습니다. 몇 번의 수업을 통해 목공 이론을 배웠고 목공 기계와 수공구 사용법을 익혔어요. 저만의 원목도마를 완성했고, 지난 수업 때부턴 소망이에게 선물할 고양이스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반려묘가 사용할 가구를 제 손으로 만든다는 게 엄청 신나는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조심스럽기도 해요. (6.7kg의 물범핏을 자랑하는) 통통한 소망이가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안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아직 목공수업 4회 차, 미천한 실력이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차근히 배워나가려 합니다.
사실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가 한참은 남아 있는데요(다 못한 나이테 이야기, 나무의 수명과 순환림 이야기, 옹이/심재와 변재 이야기, 귀여운 장비 자랑 등등...) 이런 식이면 주간보고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마무리해봅니다. 목공 수업은 내년 1월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할 이야기들도 자연히 많아지겠지요? 가끔 목공 이야기를 담아 보내겠습니다
2024년 8월
퇴사원이자 초보 목공인
김미리 드림